더세움교회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The Kingdom of GOD)






하나님나라의 성경적 이해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는 구약성경보다는 신약성경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며 특히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약학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중심적인 메시지였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특별히 공관복음서는 각각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성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현재적으로 임했다고 선포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마 4:23)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4:21)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이러한 공관복음서들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대한 특징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 라고 증언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로서 그 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으며 그 증거로서 복음이 전파되고, 귀신들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또 다른 말씀들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로서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로 묘사되고 있기도 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는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 14:25, 마 26:29, 눅 22:18)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말씀의 증언들을 정리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이 땅에 임했지만’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서 완성된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종말론과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드(C. H. Dodd) 라는 신약학자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침입을 강조하여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했으며, 예레미야스(J. Jeremias)라는 신약학자는 다드가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함으로써 미래적 종말론을 퇴색시켰다고 보고, 다드의 ‘실현된 종말론’을 대신하여, '실현되어 가는 종말론'을 주장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어가는 사건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종합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하는 실현된 종말론의 입장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천국에서 누릴 영광과 은혜,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고 하는 미래적 종말론의 입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해야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이 땅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구원에 대한 감격과 하늘의 영광을 오늘 이곳에서 누림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위해 자신의 삶과 인생을 헌신해야 한다는 사명의 재발견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이해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로 ‘나라’, 또는 ‘왕국’ 같은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능을 일러서(시편 145:11)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편 145:13)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부터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편 104:19)


위의 구절에 나타난 “나라”, “통치” 라는 단어는 개념적인 차이를 지닙니다. “나라” 라는 단어는 공간이나 영토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통치” 라는 단어는 다스림이나, 지배 또는 왕권이나 왕의 권세 등으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그 의미가 동일하게 취급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히브리 단어에서의 나라”, “왕국 공간이나 영토의 의미보다는 추상적이고 역동적인 “지배” 혹은 “다스림” 또는 구약성경에 표현된 단어 그대로인 통치” 등의 개념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영어표준번역성경(RSV)은 몇 번에 걸쳐 나라, 왕국(basileia) 이란 단어를 영어 단어인 “kingship", "kingly power" 라고 반역했을 뿐 아니라, ”reign", "rule" 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에 관하여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왕국이나 영토가 확장되었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통치, 다스림, 왕의 권세..등) 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가 완벽하게 실현된다는 뜻입니다.(마태 6:10) 그래서 우리가 이 땅위에 세워야 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삶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그 나라의 시민으로 받듯이 지켜야 할 법이 되는 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삶의 주인(왕)이 되시는 나라,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회론적 이해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교회의 중심적인 관심사와 핵심적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합니다.


판넨베르크는 <신학과 하나님 나라> 라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면서 “교회가 예수님의 메시지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충실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의 중심적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님의 메시지는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 공동체를 뛰어 넘어서 전 세계에 도래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포 바로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속에서는 세계의 미래, 즉 온 인류의 미래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메시지 외에 그 어떤 다른 곳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미래와 세계의 미래에 대하여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고 하면 교회는 바로 이 사실을 인간과 세상에 알리고 선포해야 할 뿐 아니라, 바로 이 사명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예수님의 메시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 주제로 삼아야 하며또한 이를 실현하고 이루어가는 것을 가장 우선된 사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본질상 제도나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서 움직이는 성도들의 힘과 운동입니다. 즉 교회 공동체의 일원인 성도들의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움직임이 곧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운동과 움직임이 죽어 있는 교회라고 한다면 그 교회는 오직 세상 사람들의 종교적 요구에만 관심을 갖는 하나의 제도나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당하고 있는 것도 교회들이 바로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는 그 운동과 움직임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제도나 기관 또는 형식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힘과 운동, 그리고 그 움직임을 잃어버린 교회는 세상 속에서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공동체 의식’ 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본질상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공동체라고 할 때 이 의미가 교회에 주는 도전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 세상에 안주하거나 동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둘째로 교회는 늘 그의 시선을 다가올 미래와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을 바라보며 그 사명에 전력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이 늘 돌아보아야 할 자기 정체성의 재발견과 함께 더 중요한 의미로서는 바로 우리 더세움교회가 우리의 교회론적 정체성을 바르게 하고 있는 지 새롭게 진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 더세움교회는 교회의 크기나 숫자또는 보이는 외형의 모습에 판단되는 교회가 아니라오직 주님께서 마지막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선교에 대한 지상명령을 우선적 사명으로 하는 교회인가 하는 자기의 재발견이 요구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더세움교회가 가정을, 의정부를, 한국을,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루어 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교회는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를 맛보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이나 영역, 또는 정지되어 있는 제도나 틀’ 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다스림 또는 지배’ 를 의미한다고 위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 표현된 “통치, 다스림, 지배”와 같은 단어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수직적인 면을 강조한 단어들입니다. 이 단어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수평적인 단어들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축제, 사귐, 교제, 나눔” 등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기 시작하면 자연히 우리의 삶 속에 수평적인 차원의 하나님과의 축제, 사귐, 성도의 교제, 나눔 등과 같은 생활의 변화가 뒤 따르게 됩니다.


성경은 초대교회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행2:44-47) 하고 표현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수직적인 다스림과 통치그리고 지배하심이 이루어지자 성도 개개인과 교회 전체에서 수평적인 차원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나눔과 교제와 사귐과 축제와 같은 기쁨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초대교회 안에서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를 맛보고 경험한 것입니다.


오늘 바로 우리 더세움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의 축제와 같은 예배말씀의 생활화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사귐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우러져 사랑을 나누는 성도의 교제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섬김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를 맛보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