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 (Missional Chruch)



형성배경


 선교적 교회에 대한 출발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급격한 수적 감소가  기독교의 존립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를 가장 먼저 심각하게 인식한 레슬리뉴비긴이 주축이 되어서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연구 분석 결과, 항상 서구 사회의 중심이었던 기독교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교회의 위치가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진데 비하여 교회는 여전히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것처럼 아무 감각이 없이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제는 이 전과 다른 모습의 교회의 모습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는 개념적으로는 이미 50여 년 전에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방법론으로 윤곽을 잡았지만, 이를 교회론으로 정립하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하나님의 선교 개념으로 레슬리 뉴비긴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1980년대에 GOCN(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을 중심으로 모여서 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내놓은 결과로 탄생된 교회가 선교적 교회입니다.


 GOCN 이 내놓은 선교적 교회의 개념이 완성되는데 있어서는 칼 바르트, 레슬리, 뉴비긴, 데이비드 보쉬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었다. 특히 30여년을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던 영국의 성공회 주교였던 레슬리 뉴비긴의 경우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할 수 있었고, 그가 인도에서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영국에 다시 돌아왔던 시기의 영국의 기독교 상황은 기독교가 더 이상 사회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그야말로 거의 변방으로 밀려나 존립 자체에 위기를 맞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레슬리 뉴비긴은 칼 바르트, 라이홀드 니버 등이 참여한 WCC의 52인 위원회의 의장으로서 에큐메니컬의 방법론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기독교를 어떻게 확장발전 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공개적인 토론을 이끌어 내었고, 레슬리 뉴비긴이 생각해낸 방법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방법보다는 에큐메니칼에 촛점이 맞추어져있었고, 노년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환경 안에서 GOCN이 선교라는 개념으로 문화적 상황을 교회에 도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서구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위기를 잘못된 교회론에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이 되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신앙의 최종 목적이 된 결과로 말미암아 교회의 부패와 변질이 생겨났고 이로 말미암아 교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일단 수단과 과정이 아닌 목적이 된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한 문화의 급격한 변화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문화는 더 이상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여주지 않기에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교적 교회와 같이 문화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교회론(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선교 개념(Misdio Dei)”은 신 칼빈주의처럼 모든 피조계를 하나님의 구속영역으로 보기에 교회 밖의 문화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교회 개념을 정립하기에 가장 적합한 개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적 교회 주창자들은 교회가 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건물 중심의 교회(christendom:AD313~ ) 최근 의 시기는 이제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지금을 후기 기독교사회(post-christendom)로 봄으로서 앞으로 새롭게 등장하여야할 교회는 건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침투적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교 개념으로 선교하는 성육신적(incarnational)인 교회가 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의 특징

 

a) 건물 중심의 교회보다는 삶의 예배의 자리로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역동성의 성격을 갖습니다. 출발이 성부하나님이시며 최종 목적지는 이 세상의 모든 피조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기존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외쳤어도 그들에게 교회로와서 복음을 듣고 배우라는 것이었고,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이기에 말씀이 선포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로,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 교회로 모여서 몸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그 기초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를 선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여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보내시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회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개념으로서 교회를 선교적인하나님의 개념에서 유래된 세상에 보냄 받은 선교적 교회로(missional church) 정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으로 세워진 교회는 사람들을 모으는 최종적인 목적지가 될 수 없고 이 세상에 보내지는 과정이 되어야만 하며 이 세상에 보냄 받았다는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 대신에 ‘보냄받은 교회(sending church)’ 라는 용어를 사용 하기도 하고 혹은 선교적으로 해석 된 삼위일체의 개념을 적용하여 삼위일체적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생각되어온 교회는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 자체를 유기체적인 교회로 보았기에 ‘우리가 교회에 간다’ 는 개념은 잘못된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정통적 개념의 교회가 아무리 선교에 역량을 집중한다 하더라도 선교적 교회가 될 수가 없다 단지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mission focused)가 될 뿐이기에 교회 자체가 세상 속으로 보내져야지만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선교는 교회의 사역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 바로 선교적 교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들은 교회 모임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교회는 교회라는 건물중심의 형태로 모임을 유지하지만, 선교적 교회는 성육신적으로 보냄을 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주일 모임 뿐 아니라 평일에도 다양한 장소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중심이 된 모임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교회라는 공간이 주는 부담감으로부터 자유하여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끔 하는데에 목적이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교라는 것입니다.

 

b) 계시에서 경험으로


 선교적 교회는 삶의 현장을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지기에 기존 건물 중심의 교회에서 전문 교역자의 말씀이 선포되며 말씀을 중심으로 모임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말씀이 나의 삶 가운데 실천되고 경험되어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이웃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하고 기도하는 것을 뛰어넘어, 가정이나 혹은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이웃을 초청하여 그들을 환영하고 내가 들었던 계시의 말씀이 나의 삶이 되도록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며,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c) 믿음에서 따름으로


 전통적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기초한 제자도적인 실천적 삶을 강조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충성하셔서 이 세상에서 성육신의 삶을 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세상으로 보냄을 받으며 예수님께서 충성하셨던 모습을 본받아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같은 충성된 모습으로 제자도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예수를 믿는 것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충성을 본받아 따르는 것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d) 성장에서 확장의 개념으로


 선교적 교회의 원리는 교회 자체의 성장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확장 개념입니다. 교회성장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 교회의 사이즈와는 상관없이, 내 삶이 하나님의 선교가 되게하고, 내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적 교회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을 훈련 시켜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특히 새롭게 참여하는 교인들에게는 이전과는 달라진 교회의 정체성과 교인의 역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e)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선교적 교회에서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모든 피조 세계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 받음으로 인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었다는 생각하면서 찰스 다드(Charles Harold Dodd)의 실현된 종말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톰 라이트의 하나님나라 개념과 일맥상통하며 현재적 하나님나라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것인가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윤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f) 개인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화두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생각하며 진리도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교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개인주의를 가져왔습니다. 이전까지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였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교회를 많은 (다양한)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부패는 개인 중심적 신앙과 연루가 되어 있으며, 공동체의 죄가 아닌 개인의 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많은 교회가 실용주의로 빠지면서 기복 신앙과 비지니스가 교회를 집어 삼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교회의 부패는 개인 중심의 신앙보다도 상업이 극도로 발달되고 있는 실용주의 사회와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사회의 불공정한 시스템과 구조적인 악이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책임은 개인 중심의 신앙형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에서는 개인보다 공동체에 관심을 둡니다. 이런 현상은 레슬리 뉴비긴이 지적하듯이 복음주의자들이 ‘칭의’는 이야기하는데 사회정의에는 무관심한 것과, 또한 자신의 영혼구원에만 관심 있고 성경에서 말하는 총체적 구원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나라의 한 백성으로서 교회의 연합보다는 분열과 경쟁으로 대표되는 개교회의 이기주의 등이 스스로 복음주의자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선교적 교회는 모든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한 분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선교에 사명을 가진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많은 개인의 집합체가 아닌 개인을 공동체의 일원(a part)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몸(one body)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적 교회에서 교회의 부패와 죄성은 개인과 상관없는 일이 아닌 나 자신의 문제이며, 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회복해야 하는 일입니다.